
(사진 설명 : KBS 2TV '은수 좋은날' 홈페이지 캡처 인용(c))
한국은 오랫동안 ‘마약 청정국’으로 여겨져 왔다. 엄격한 법과 강력한 단속 덕분에 상대적으로 마약 범죄율은 낮았고, 사회적 인식도 ‘마약은 남의 나라 이야기’로 치부되던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상황은 급격히 변하고 있다.
온라인과 SNS를 통한 마약 거래, 해외에서 유입되는 다양한 신종 약물, 그리고 청소년을 포함한 일반인들의 마약 접촉 빈도도 늘어나면서 ‘마약 청정국’이라는 신화는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특히 텔레그램과 같은 암호화된 메신저 플랫폼은 마약 유통의 새로운 경로가 되었고, 국내 단속망이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틈새에서 마약 거래가 활발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단순한 범죄 사건을 넘어, 마약이 점차 우리 사회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물론 여전히 마약을 사용하는 사람은 극소수고, 마약 문제가 사회 전반의 ‘생존 전략’으로 자리 잡을 조짐도 표면화되지 않았다.
현재 KBS 2TV에서 방영 중인 새 토일 미니시리즈 ‘은수 좋은 날’이 주목하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마약을 하지는 않지만, 빠르게 돈을 벌고 싶어 하는 마음’이 확산되는 사회적 심리를 담아낸 드라마다. 극 중 강은수는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고 있지만, 주식투자에 실패하고 암까지 걸려 자살을 시도했던 남편의 병원비와 생계의 압박 앞에서 ‘빠르고 큰돈’을 벌 수 있는 마약 밀매에 손을 대게 된다.
그것은 단지 선택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사회적·경제적 불안정과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면서, ‘정직한 노동’을 장기간 지속해도 삶을 바꾸기 어렵다는 절망감과 맞닿아 있다. 예전 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성실한 노력’이 곧 성공에 정당성을 부여하던 사회로 인식됐다.
하지만 불평등이 심화되고 중산층 붕괴가 현실화하면서, 젊은 세대와 서민층 사이에서는 ‘노력만으로는 안 된다’는 냉소와 좌절이 퍼지고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 마약을 포함한 불법·편법적인 ‘빠른 부’에 대한 유혹과 호기심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마약은 ‘돈이 되는 불법’이라는 점에서 심리적 저항을 약화시킨다. ‘법을 어기면 안 되지만, 지금 당장 돈이 필요하다’라는 이중적 고민이 많은 사람을 흔들어서 그 경계를 쉽게 무너뜨린다. 마약 문제를 단순히 개인의 윤리적 실패가 아닌, 사회 구조와 가치 체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써 인식해야 하는 이유다.
‘은수 좋은 날’은 바로 이런 현실을 소재로 해 우리 사회가 외면하고 있는 진실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고 있다. 가족을 지키려는 평범한 주부가 점차 마약 범죄에 얽히면서 겪는 내면의 갈등과 고통은, 단지 픽션이 아닌 ‘누군가의 현실’일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마약 문제는 더 이상 먼 곳의 ‘특별한 범죄’가 아니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경제적 환경 속에서 불안과 절망에 직면한 평범한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다시 사회에 어떤 파장을 낳는지를 깊이 고민해야 할 때다.
대한민국 사회는 이제 ‘마약 청정국’이라는 안일한 믿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단속과 처벌에만 의존하던 한계에서 벗어나, 사회 안전망과 경제적 불평등 해소, 청소년 보호 강화, 정신건강 지원 등 다각적 접근이 필요한 상황이다.
‘은수 좋은 날’이 던지는 메시지는 그래서 더욱 무겁다. 우리가 모두 외면하지 않고 마주쳐야 할 현실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대한민국에서 마약이라는 범죄는 더 이상 특정한 계층이나 유흥 세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상에 가까이 다가온 현실임을 직시해야 한다.
“나와 당신 또는 우리들의 자녀도 은수가 될 수 있다.” 평범한 주부 은수의 이야기는 단지 드라마 속 특정한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특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녀가 맞닥뜨린 선택은 더 현실적이고 더 위험하다. 우리가 지금 그런 사회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조용한 ‘현타’로 다가온다! ▣
- 현타 (現time) : ‘현실 자각 타임’을 줄여 이르는 말로, 헛된 꿈이나 망상 따위에 빠져 있다가 자기가 처한 실제 상황을 깨닫게 되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