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마약 좀비거리 ‘켄싱턴’ 30년 선한목자 채왕규 목사

(사진 설명 : 기자는 어머니 장례로 잠시 한국에 나온 채왕규 목사를 만났다.)

美 켄싱턴 거리에서 마약 예방 활동하는 한인 목사
“마약은 처음에 강하게 거절해야”
29년째 마약 중독자 돕는 채왕규 목사, 한국 “초기 대응이 핵심” 경고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북동부 지역에 위치한 ‘켄싱턴 거리(Kensington)’는 이른바 ‘좀비 거리’로 불린다. 마약 중독자 수천 명이 거리에서 약물을 투약하거나 비틀거리며 돌아다니는 모습이 일상이 된 이곳은, 미국 내에서도 대표적인 마약으로 오염된 ‘좀비 랜드’다.

미국은 펜타닐과 헤로인 등 마약 문제로 인해 사회적 위기를 겪어 왔는데, 특히 2020년대 들어서 펜타닐 중독자 수가 급증하면서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2021년 기준, 펜타닐로 인한 미국내 사망자 수가 교통사고와 총기사고로 사망한 숫자보다 많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다.

그런데 이 켄싱턴 거리에 매주 나와 마약 중독자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상담과 해독을 권유하는 한인 목사가 있다. 29년째 이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채왕규(58) 목사다.

채 목사는 1992년 말 미국에 왔다. 당시는 펜실베이니아주 몽고메리카운티에 있는 작은 도시 컨쇼호컨(Conshohocken)이라는 백인마을에 처음 정착했는데 다음해 1993년 뉴욕 플러싱으로 이전하면서 리폼드 신학교(New York Reformed Seminary)를 나와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됐다.

목사된 후 처음 알게 된 어느 선배 목사의 이탈리안 갱을 위한 목회활동을 우연히 돕다가 당시 청소년 범죄 조직 활동에 연루된 한인 2세들을 상당수 접하면서 한인 청소년에 대한 측은지심이 생겼다고 했다. 당시 채 목사는 공부에도 욕심이 생겨 박사학위까지 마치면서 자신이 중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공부했기 때문에 가졌던 낮은 자존감도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했다.

(사진 설명 : 곳곳에 마약에 취해 쓰러져 있는 마약중독자들이 미국 필라델피아 켄싱턴거리에 넘쳐난다.)

필라델피아로 돌아온 채목사는 뉴비전청소년커뮤니티센터라는 비영리 단체를 만들고, 마약 중독자들에게 식사 지원, 상담, 해독 프로그램 안내 등을 진행했다. 단체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커피하우스와 중고차 딜러샵도 운영하면서 현재 매주 화요일마다 500개의 햄버거와 음료를 켄싱턴거리의 마약 중독자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목회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켄싱턴에서 디톡스병원을 크게 운영하고 있는 현지 한 CEO로부터 한인들을 위한 의료기관 설립을 제안받고 자신이 속한 뉴비전교회에 18병상 규모의 마약 중독자 치료센터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채목사는 “미국의 마약 문제는 이제는 공공안전, 공중보건을 모두 위협하는 수준까지 왔다”면서 “한국은 아직 초기 단계지만 지금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으면 미국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대검찰청이 발간한 ‘2022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국내 마약사범은 최근 5년간 약 50% 증가했으며, 검거된 사람 10명 중 6명은 30대 이하로 나타났다. 채 목사는 “호기심이나 가벼운 시도로 시작된 마약이 빠르게 강한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처음부터 단호하게 거절하는 자세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필라델피아의 켄싱턴 거리는 미국 내 마약중독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필라델피아시는 너무 많은 중독자들을 위해 단속하기보다는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깨끗한 주사기를 배포하는 식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마약으로 인한 사회적 피해는 물론이고, 의료·복지 시스템에도 큰 부담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채 목사는 한국 사회가 마약 문제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초기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국은 지금 위험 수준이 1~2단계에 불과하지만, 대응이 느리고 관대한 편이다. 마약에 빠진 자녀를 타이르거나 설득하는 건 효과가 없다. 초기엔 경찰에 신고해 격리 조치를 취해야만 회복의 가능성이 생긴다”고 말했다.

미국인 가정에서는 단호하게 자녀의 마약중독에 반응한다고 했다. 그는 마약 중독자가 스스로 회복하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 “중독자는 대부분 자신이 도움 없이는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중독 상태에서는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주변의 강력한 개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켄싱턴 거리 중독자들 중 일부는 우리에게 욕을 하거나 위협하기도 한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다”며 “매년 단 한 명이라도 마약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면 그만한 보람은 없다”고 말했다.

채목사는 “미국에서는 마약중독에 관련된 정부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굉장한 파워를 가집니다. 또한 마약중독자 1명이 있으면 법원, 상담실, 치료사, 복지사 등 7~8군데서 달라붙어서 도와주고 있고, 법원에서도 의사, 약사보다 마약중독자 라이센스를 가진 상담자를 더 신뢰해서중독 청소년들을 보내주기도 합니다. ”라고 말했다.

채 목사는 장기적으로 한국에도 해독과 회복을 지원할 수 있는 전문기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중독자 대상 디톡스 프로그램을 수행할 수 있는 독립적인 공간 마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향후 한국에서도 치료 중심 디톡스 센터를 만들고 싶다”며 “제주도를 후보지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한국마약신문=유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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