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중독으로 인한 사망자가 최근 5년간 1,110명에 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매년 약 220명, 즉 1.6일마다 1명이 약물로 목숨을 잃고 있는 것이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이들 중 80% 이상이 불법마약이 아닌 병원에서 합법적으로 처방된 전문의약품과 의료용 마약류에 의해 사망했다는 점이다.
그간 ‘마약’이라고 하면 어두운 뒷골목에서 은밀히 거래되는 불법 약물을 떠올리기 쉬웠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의료용 약물이, 오히려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는 ‘합법적 유해물질’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우리는 마약류의 유해성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마약의 유해성은 단지 법적 분류에 있지 않다. 누구에게,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그 위험은 얼마든지 치명적이 될 수 있다.
서미화 의원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사망자 중 53.7%가 여성이며, 40~50대가 가장 높은 비율(21.9%)을 차지한다. 이는 약물중독이 특정 계층이나 연령대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생활 속 위협’임을 보여준다. 특히 최면진정제, 항우울제, 항불안제, 항정신병약 등 정신과적 처방약이 다수 검출된 점은 현대인의 정신건강 위기와 그에 따른 약물 의존의 심각성을 드러낸다.
현재 의료 현장에서는 환자의 주관적 증상에 의존해 처방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약물 복용 후 추적 관리가 미흡한 실정이다. 의료진 입장에서도 진료 시간과 행정 부담에 밀려 약물 오·남용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는 어렵다. 그 결과, 진료실에서 받은 약이 오히려 독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제는 정부가 보다 강력한 처방 관리 시스템을 마련할 때다. 반복 처방 및 다중 의료기관 이용자에 대한 모니터링 강화, 의료용 마약류 통합관리시스템의 실효성 제고, 환자 대상 복용 교육과 경고 시스템 도입 등이 시급하다. 약물 중독은 예방이 가능한 사망이다. 단 한 명의 생명이라도 구조할 수 있는 체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또한, 우리는 마약류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불법과 합법의 경계가 아닌, 위험성과 의존성의 기준에서 접근해야 한다. 병원에서 처방받았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으며, 스스로의 복용 습관과 건강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약은 병을 고치는 도구일 수 있지만, 동시에 잘못 쓰이면 생명을 해치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일상 속에서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약물이 생명을 위협하는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국민 건강을 위한 약물 안전망 구축은 선택이 아니라, 지금 당장 실행해야 할 필수 과제다.